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골목 화단에 매발톱을 옮겨 심었다

by 팔마로사 2025. 5. 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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– 2년을 기다린 꽃을 다시 기다리는 일
매해 봄이 오면, 골목 화단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해요.
"여긴 왜 이렇게 볕이 안 드나…"
햇빛이 아쉬운 자리에 무얼 심을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죠.
그래서 지난 가을, 실험처럼 심어봤어요.
매발톱이라는 이름의 꽃을요.


매발톱은 참 조용한 꽃이에요

매발톱(Columbine)은
이름처럼 맹금류 발톱처럼 생긴 독특한 꽃잎을 가졌는데,
어쩐지 그 모습이 참 소박하면서도 단단해 보여요.
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,
반그늘에서도 꽃을 피운다는 점.
바로 그 점이 이 골목 화단과 꼭 닮았어요.
작년 가을, 작디작은 포기 두 개를
화단에 살짝 눌러 심어두었는데,


올해 봄, 조용히 꽃을 올리더라고요.
무엇보다 신기했던 건
씨앗을 심고 2년이 지나야 꽃이 핀다는 점.
꽃 한 송이 피우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는 식물이라니…
그 기다림 자체가 매발톱의 일부처럼 느껴졌어요.


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

옥상 화분에서는 또 다른 매발톱 두 포기가 자라고 있었어요.
둘 다 어두운 자줏빛 꽃


조금 미안한 말이지만, 솔직히
꽃 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.
그렇다고 뽑아버리기엔
그 아이들이 버틴 2년이 너무 아깝더라고요.
그래서 오늘,
그 두 포기를 골목 화단으로 옮겨줬어요.
“마음에 드는 꽃이 아니어도,
그늘에서 꿋꿋하게 피워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?”
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요.


씨앗에서 자란 아기 매발톱,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

그리고 옥상 구석구석,
작년 꽃이 지고 난 자리에
자연 발아된 매발톱 싹들이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었어요.


작디작은 손톱만 한 잎들이지만,
그 속엔 또 다른 2년이 들어 있겠죠.
그래서 이 아이들은 따로 분갈이해서
화분에서 자라게 하고, 내후년 봄을 기대해보려고요.
혹시나, 다음엔 마음에 쏙 드는 색이 피어날지도 모르니까요.
(뭐, 또 맘에 안 들 수도 있지만요. 웃음)


알쏭달쏭한 꽃, 무궁무진한 얼굴들

매발톱은 정말 다양한 품종이 있어요.
겹꽃, 단꽃, 흰색부터 보라, 검정에 가까운 자주색까지.
씨앗을 심으면 어떤 색이 나올지 모른다는 것도
이 꽃을 키우는 묘한 재미예요.
혹자는 말하죠,
“씨앗 심는 건 반은 복권이다.”
매발톱은 딱 그런 꽃이에요.
내가 뿌린 씨앗이
어떤 얼굴을 가지고 태어날지
아무도 몰라요.
심지어 나도요.

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매발톱 꽃들


오늘의 정원 작업 요약

  • 장소: 골목 화단 (햇빛 2~3시간 드는 북서향 자리)
  • 이전 식재: 작년 가을에 매발톱 2포기
  • 오늘 작업: 옥상에서 자란 매발톱 2포기 이식
  • 추가 작업: 자연 발아된 유묘들 분갈이 → 화분에서 키우기
  • 기대 사항: 내후년 봄, 자연 발아 개체들의 개화

 


나중을 위해, 오늘을 심는다

이 화단에 꽃이 가득 피는 날이 올까?
확신은 없지만,
이 작은 포기들이 그 답을 만들어줄지도 몰라요.
조용하고, 은은하고,
누군가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
모를지도 모를 그런 꽃.
매발톱은 봄의 속삭임 같아요.
크게 울리지 않고,
슬며시 스며드는 봄.
오늘 그 속삭임을 골목에 옮겨 심었습니다.
그러니,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
조금씩 피어나 주었으면 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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